그곳엔 삶이 있다

#부산에서 인천으로

영순씨는 육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항만부두를 관리하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국제시장 안 저고리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습니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뀌면서 영순씨의 가족들도 함께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열네 살 무렵 일입니다.

"아버지가 항만관리청에 공무원으로 계셨어요. 그 덕에 울릉도도 가보고, 포항으로 전학을 가서 산 적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 혼자만 인천으로 갔는데, 자식이 6명이나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으니까 가족 전부 이사를 간 거죠. 엄마는 식구가 많으니까 부산에서 한복 저고리 만드는 일을 했었고요."

그런데 1년 뒤 영순씨의 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영순씨 가족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10년 넘게 바느질 일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생활이 안 됐어요. 그 당시에 저고리 하나 바느질해서 받는 돈이 200원이었어요. 미싱기도 없어서 손으로 다 하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느질해도 혼자서는 2개밖에 못 만들었죠. 이 돈으로는 쌀 한 되도 사기 어려웠던 시절이에요."

그는 옛일을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했습니다. 어느새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인천 부산한복

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배우는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한 덕수라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극중 덕수의 일생을 보면 한국전쟁을 겪은 전후 세대가 그 당시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부산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인천 동구에는 중앙시장이 있습니다. 중앙시장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했던 곳이라고 하는 데요. 중앙시장은 1972년 문을 열었지만, 그 이전부터 한복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밀집해 상권을 이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부산한복'입니다. '인천에 웬 부산?', 가게 상호부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부산한복의 2대 대표인 전영순(70)씨는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영화로도 담지 못할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영순씨의 바람대로 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굶다시피 하며 일한 그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일 것입니다. 올해로 일흔이 된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습니다. 지난 1월에는 양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 데요. 한복 만드는 작업 특성상 서서 하는 일이 많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영순씨는 슬하에 4남매를 두었습니다. 지금은 셋째 딸 이은진(39)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부산한복 3대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은진씨 기억 속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매일 바빠 보였다고 합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데다, 휴일에 쉬지도 못해 제대로 된 나들이 한 번 가본 적 없다고 하네요.

#2대에서 3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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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 / 선정년도

1986년 창업 / 2020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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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주소

032-765-2119

인천광역시 동구 중앙로 65-1(송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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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웬 부산?

영순씨는 맏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도와 함께 바느질 일을 시작했습니다. 둘이 바느질을 해 돈을 버니까 집안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고 하네요. 한복집을 차리게 된 건 영순씨가 결혼을 한 뒤 일입니다.

"바느질만 해서는 동생들 공부 못 시키겠다 싶어서 제가 결혼한 뒤에 엄마한테 한복집을 차려드렸어요. 상호는 저희가 부산에서 살다가 올라오기도 했고, 부자가 되자는 의미에서 부(富)자를 넣어 엄마가 지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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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변함없을 '가족'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영순씨에게 자신의 삶에서 한복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지만 나와 식구를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자식들도 잘 키울 수 있게 해준 거죠."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가족'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