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를 이긴 동네 빵집

#프랜차이즈 빵집도 두렵지 않다

보통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근처에 입점하는 걸 꺼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거꾸로입니다. 그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말합니다. 이 대표의 이런 자신감에는 물론 근거가 있습니다. 이미 경쟁을 해서 승리한 경험이 있는 것이죠.

원래 쉐프부랑제 근처에는 프랜차이즈 빵집 2곳과 일반 빵집 2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건 쉐프부랑제 뿐입니다. 6개월 전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이 가까운 거리에 들어왔는데도 '자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입니다.

"오히려 (프랜차이즈 빵집과) 같이 가는 게 저한테는 득이 될 수 있어요. 빵 맛을 비교했을 때, 소비자가 인정해주면 되는 거니까요. 아무리 내가 잘 만들어도 소비자가 맛이 없다고 느끼면 얼마 안 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이 대표의 자부심은 개업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그는 개업 초기 '고급화' 전략을 꺼내 들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 대신 가격은 조금 비싸도 고품질의 빵을 만들어 파는 전략으로 승부를 건 것이죠.

"빵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유기농 등 최고급을 사용해요. 몇백 원 단가를 낮추려고 재료비를 아끼면 소비자들이 금세 알아차리거든요."

가맹사업을 하자는 제안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사업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고 하는 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빵의 품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당장의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

김포 쉐프부랑제

'빵알못(빵을 잘 알지 못하다)'인 저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빵집들이 있습니다. 대전의 '성심당', 군산의 '이성당', 안동의 '맘모스베이커리'처럼 유명한 빵집들은 가본 적 없지만 왠지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국은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각종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빵집만큼은 예외인가 봅니다.

김포시 사우동에는 쉐프부랑제라는 빵집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빵집들 만큼 '전국구'는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만큼은 최고를 자부하는 빵집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쉐프부랑제의 이병재 대표입니다.

전라북도 고창군이 고향인 이 대표는 16살 무렵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습니다. 서울의 한 빵 공장에서 일하던 고향 선배가 제빵 기술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던 것이죠. 이 대표는 을지로의 한 빵집에서 처음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9시~10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었다고 하는 데요. 그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만2천원.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가방끈이 짧아서 기술을 익혀야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은 얼마 안되지만 숙식을 제공해줘서 일을 배울 수 있었죠.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까 적성에 안 맞았으면 계속 못 했을 거예요. 근데 늦게까지 일을 해도 힘이 든다고 못 느꼈어요. 일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젊었으니까."

#생계를 위해 배운 제빵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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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 / 선정년도

1989년 창업 / 2020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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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주소

031-998-1313

경기도 김포시 사우중로 82 (사우프라자 108,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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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이력

이 대표의 이력은 꽤 화려합니다. 개인 빵집을 차리기 전에는 전국 유명 빵집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군산의 이성당에서 3년, 마산(현 창원)의 코아양과에서도 3년, 서울 세종호텔에서도 잠깐 일을 하다 서울 양재동에 개인 빵집을 차려 10년 넘게 운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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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 본 작명

가게 상호인 쉐프부랑제는 프랑스어로 요리사를 뜻하는 셰프(chef)와 빵집 주인을 일컫는 불랑제(boulanger)를 더해 지었습니다. 이 대표는 '최고의 요리사'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셰프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만 그의 기억으로는 20년 전 셰프가 들어간 상표는 8개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미래를 내다본 작명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