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맛과 김치 맛

#집집 마다 다른 김치 맛처럼 참기름 맛도 다 달라

박정수(52)씨는 지난 1988년 문을 연 '대성기름집'의 2대 대표입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부모님에게 가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정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합니다. 아들은 작업복 대신 양복을 입고 출퇴근 하길 바랐던 것이죠.


"그때는 이 일이 좀 더 자유롭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다니는 것보다 벌이도 나았고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식이 번듯하게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출퇴근하면서 직장 생활하길 바라죠. 옛날 분들은 그게 더 심했어요. 당시에는 아버지께 많이 혼났죠."

그로부터 어느새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정수씨 부부의 노력으로 대성기름집의 기름은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성남시와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한 것이지요.

정수씨에게 대성기름집만의 '기름 맛' 비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 무딘 감각으로는 기름의 맛과 향이 특별하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수씨는 '김치 맛'을 예로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습니다.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잖아요. 기름도 김치 맛처럼 약간씩 달라요. 어떤 깨를 쓰느냐, 깨를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거든요. 한 동네에 사는 이웃주민 두 분이 기름을 짜러 오세요. 한 분은 저희 집에서 기름을 짜고, 다른 한 분은 안쪽 집에서 기름을 짜요. 같이 차를 타고 와서 기름을 짜는 곳만 다른 거죠.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먹는 사람은 맛의 차이를 느끼는 거죠."

성남 대성기름집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모란시장은 수도권 전통시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이죠. 모란시장은 향토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개 도축'과 관련한 갈등이 몇 년 전까지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모란시장은 좋든 싫든 한때 '가축 시장'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이와 함께 모란시장을 대표했던 품목은 '기름'입니다. 양질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짤 수 있는 '기름 시장'의 명성도 가축 시장 못지않은 데요. 1990년대 말께 모란시장 내 기름집은 무려 50여 곳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포 수가 조금 줄어 38곳의 기름집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모란시장의 기름집들은 '상생'하는 사이입니다. 기름집이 여러 곳 몰려있다 보니 양질의 깨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선의의 경쟁도 펼칩니다. 맛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은 물론, 기름집 주인들이 손님을 응대하는 말투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네요.


"모란시장의 기름 맛과 향이 다른 곳보다 좀 더 나아요. 기본적으로 기름집이 38곳 있으니까 깨를 구매하기 쉽고, 가격 경쟁력도 있죠. 특히, 손님들께 잘할 수밖에 없어요. 주인이 한 번 틱 거리면 손님들은 '어? 그래 알았어' 하고 바로 옆집에 가면 되니까요."

그러나 고민거리도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모란시장 기름집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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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 / 선정년도

1988년 창업 / 2020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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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주소

031-754-2883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83번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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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참기름은 틀리다

대성기름집이 있는 모란시장 골목에 가면 기분 좋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정작 정수씨는 하루에 기름 냄새를 두 번 맡는다고 합니다. 가게 문을 열 때 한 번, 퇴근 후 옷을 갈아입을 때 한 번. 계속 맡다 보니 무슨 향이 나는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른 기름집 주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란시장 기름집 모두가 손님들에게 맛있는 기름을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저희 집 뿐만 아니라, 모란시장에 있는 기름집들 다 좋은 깨 쓰고, 손님들한테 박하게 대하지도 않으니까 많이 찾아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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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사장은 둘째 아들?

정수씨는 슬하에 두 아들을 뒀습니다. 큰아들은 기름집 대를 잇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대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은 가게를 이어받겠다고 했다네요. 그는 아들에게 "싫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이 일이 고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대를 잇겠다는 아들의 의사를 반대하지 않는 건 지난 세월 그가 느낀 보람과 행복 덕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