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와 커피, 낭만이 흐르는 곳

#등대지기를 꿈꾼 소년

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안 대표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도 아닌 '등대지기'였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바다에 세찬 파도를 뚫고 오는 배들한테 불빛 하나 내려주는' 등대지기가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실제 등대지기를 뽑는 시험에 응시하려고까지 했으나, 기계 조작을 잘 해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다고 하네요. 대신 지금은 손님들에게 '물지기'로 불립니다. '흐르는 물을 지키는 물지기', 어찌 보면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입니다.

"개항장지구에 어둠이 내렸을 때 손님이 오든 안 오든 간판 불을 켜고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등대지기와 비슷한 점이 있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교급이 아닌 나만의 행복."

흐르는 물은 음악을 듣는 곳이지만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안 대표가 소장하거나 손님들이 가져온 LP 또는 CD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가 소장한 LP만 5천장 가량이니 웬만한 노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LP의 음은 녹음할 때부터 '사람의 감정을 안 다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흐르는 물에서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요즘은 음원으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저희 가게는 못 틀어드리는 음악도 있어요. 손님들이 틀어달라는 노래의 95% 정도는 바로바로 나와요. 제가 모르는 음반을 얘기하면 '잠깐 기다려 달라'하고 찾아본 뒤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죠. 그래서 배우는 음악도 많아요. 나이, 성별, 직업별로 음악의 깊이, 넓이가 다 다르거든요."

인천 흐르는물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지금이야 구도심으로 불리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최대 상권을 이룬 곳입니다. 하지만 신포동 일대 개항장지구는 인천 내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인천항 내항의 항만기능이 점차 줄어든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 안원섭 대표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운영 중인 LP카페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흐르는 물이 위치한 신포동의 매력이 뭐냐고 묻자 답변이 쉴새 없이 쏟아집니다. 천진난만한 그의 모습에서 이 지역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가게를 꾸준히 이어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40~60대를 지나가고 있는 인천 사람들은 이 동네에 와서 영화를 봤고, 쓴 소주 한잔을 마셨고, 레스토랑에 가서 경양식 돈가스를 먹었어요. 대한서림에서 책을 사고, 하다못해 나이트클럽을 가도 이 동네로 왔죠. 개항이 되면서 예술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커피든 모든 게 이쪽으로 들어왔어요. 가장 좋은 건 엄마 품처럼 어렸을 때 추억이 거의 변함 없다는 거예요. 신도시에 가면 편리하긴 하지만 왠지 내 옷이 아닌 것 같은데, 차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죠." 백년가게로 선정된 건 그의 인생에 큰 자부심이자,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됐습니다.

#따뜻한 공간, 따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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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 / 선정년도

1989년 창업 / 2019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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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주소

032-762-0076

인천 중구 신포로31번길 9(관동 3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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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와의 에피소드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원래 상호는 시 구절을 인용해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였어요. 그렇게 몇 년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가게에 예술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관에서 볼 땐 상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이라고 줄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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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회복 기원

안 대표는 손님들이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이 '외갓집'같은 곳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우연히 방문했어도, 가끔 갔어도, 오랜만에 갔어도 그 사람이 있어서 따뜻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