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과 함께한 40년,

맞춤 양복에 인생을 걸다

#양복으로 맺은 미군과의 인연

이인재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10대 때부터 송탄(평택)에 위치한 양복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역할은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고생길의 출발점이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심부름을 하면서 다림질하고, 손바느질하는 하는 걸 배웠어요.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헝겊에 바느질하는 연습을 많이 했죠.(웃음) 일이 손에 익으면서부터는 셔츠, 바지, 상의를 만들고 재단하는 걸 하나하나씩 배웠어요. 이렇게 배워서 1979년에 제 가게를 처음 연 거죠."

자신만의 상호를 단 가게를 연 뒤로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미군들 사이에서도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바느질도 직접하고, 다리미도 연탄불로 데워 사용해야 하니까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옷이 적었죠. 상의는 1장, 바지는 많아야 4장 밖에 못 만들었어요. 그래도 손님이 몰려오면 일은 해야 하잖아요. (미국에) 간다고 그러니까. 한 번은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일 해봤어요. 그쯤 되니까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더라고요.(웃음) 참 열심히 했죠."

평택 에이큐양복점

오산 공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평택시 신장동에 가면 영어로 된 간판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상점 대부분의 주요 고객이 '미군'인 점을 고려하면 이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죠.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재 대표입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해도 어려운 게 장사라고 하는데, 그는 언어와 문화는 물론 크고 작은 취향까지 다른 외국인들에게 '맞춤 양복(장)'을 만들어주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67살이 된 이인재 대표는 영어로 손님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합니다. 직접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 뿐만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주문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회화는 물론 작문까지 두루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이 대표와 인연을 맺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이따금 양복 제작을 의뢰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인연이 30년 넘게 이어지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해병대 근무하셨던 분인데, 30년 전에 저희 양복점에서 옷을 해 갔어요. 그분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군 제대를 하고 사업을 하게 됐는데, 꼭 봄과 가을에 한국으로 나와서 옷을 열 벌씩 했거든요. 나중에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옷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 부인한테 이메일이 온 거예요. '자기 남편이 주문하고 혹시 안 가져간 거 있느냐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손님들을 추억하는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집니다.

#미국에서 전해진 부고 소식

01

창업일 / 선정년도

1981년 창업 / 2020년 선정

02

연락처·주소

031-666-4786

경기도 평택시 쇼핑로 6-2(신장동, 1층)

03

아흔까지 남은 20년

이인재 대표가 처음 양복점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 50곳 넘는 양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 10곳 남짓입니다. 이 대표도 가게 규모를 줄여 지금 자리에 10년 전쯤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양복점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어서 일까요. 그의 꿈은 '90살까지 양복점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04

맞춤 옷 장점은?

"맞춤 옷은 체형을 다 확인하잖아요. 옷 입는 사람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죠. 앞으로도 저희 가게 방문해서 옷을 맞추는 모든 분들이 만족할 수 있게끔 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잘 해드릴 테니까 편한 마음으로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